길 위에서 나눈 대화 50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타는 목마름으로 남몰래 불러봤던 이름, 목이 터져라 외쳐봤던 이름, 모진 시련 속에 마침내 쟁취했던 이름, 민주주의! 한쪽에서는 민주주의의 과잉을 얘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얘기하는 이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현장민주주의의 핵심은 대중과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대한이연은 그 전통을 유지하면서 현장을 지켜내고 있다. “현장에 문제점이 발생하면 쉬는 시간에 조합원들 소집을 해서 ‘부서에 이런 이런 문제가 있다’ 쭉 얘기를 하고, ‘이 문제가 비단 그 사람의 문제냐. 누구든 찍히면 잔업을 안 시킬 수 있는 거 아니냐. 이건 문제다’라고 서로 공유를 하고,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라고 물어보죠. 그러면 조합원들이 ‘가서 얘기를 해라’ ‘어떻게 하자’ 얘기를 하죠...

“우리도 사람이란 말이야!”

87년 노동자들이 거대한 함성을 지르면서 일어날 때 그들의 주요한 구호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였다. 중증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서 버스에 쇠사슬을 묶으면 외쳤던 구호는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였다. 사람이지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채 살아왔던 이들이 스스로 사람임을 선언하는 순간 세상은 요동쳤다. 대중은 그렇게 사회와 역사의 주체로 나오는 것이다. 투쟁은 활동가가 아니라 대중이 중심이 됐을 때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끝임 없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대중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대한 대중의 능동적 힘 속에서 민주노조를 경험했던 현대중공업 조돈희는 대중이 주체가 되는 현장평의회운동을 누누이 강조한다. “내가 집중한 것은 현장조직운동이 선진활동가들만의 투사집..

대중을 믿으세요?

없이 살면서 억눌려온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힘을 합쳐야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그래서 무수한 변혁사상들은 대중의 단결과 그 단결된 힘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것이다. 사회변혁을 꿈꿔왔던 무수한 활동가들이 대중 속에서 그 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지나한 과정이고, 때로는 믿었던 대중으로부터 배신을 경험하기도 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이다. 87년 6월항쟁을 광주에서 경험했던 노동변호사 박훈은 ‘거대한 민중의 바다’라는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민중의 열기라는 것은 앞에 나서는 사람보다는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들이 진짜 민중의 바다예요. 어디가도 숨겨줘요. 없다고 그러고... 아니면 ‘씨발놈아 왜 들어와’ 그러면서 자기..

현장민주주의

노동과 투쟁과 생활의 근거지로서 현장은 대중의 역동성이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는 토대이다. 이런 현장에서 대중을 주체화시키고 그 역동성을 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제도와 기풍이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런 현장민주주의를 통해 대중은 서로를 신뢰하고, 자신과 주위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적발한 투쟁 공간에서 현장민주주의를 가장 모범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대중주체의 직접민주주의는 하나 하나의 대중을 주체로 만들기 위한 최소 단위에서부터의 민주적 공동체운영에서 나타난다. 2001년 폐업에 맞선 갑을전자노조 투쟁과 장기간 노조 탄압과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을 벌였던 호텔리베라노조의 사례는 투쟁시기 현장민주주의의 생생한 모범을 보여준다. “10명 단위로 8개 조를 짜서 조장들이 있어요. 농성을 ..

대중을 주체화한다는 것

활동가가 중심이 되는 투쟁은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고, 투쟁 과정에서 대중이 중심이 됐을 때만이 그 투쟁은 거대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끝임 없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대중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중이 주체가 되는 현장평의회운동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조돈희는 현장조직운동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내가 집중한 것은 현장조직운동이 선진활동가들만의 투사집단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자발적으로 현장에서 투쟁하면서 그들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게 하는... 현장권력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우리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현장의 투쟁을 경험했던 이런 동지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현장에서 자기 문제를 스스로 ..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

변혁운동의 힘은 사상과 대중에서 나온다. 대중은 계급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사상은 대중투쟁 속에서 풍부한 현실의 힘을 얻는다. 현장과 지역과 부문운동 속에서 끝임 없이 대중을 조직하고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대중에 대한 신뢰이다. 격렬한 투쟁 과정이나,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을 헤쳐 나가는 힘은 ‘대중과 호흡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였다. 87년 6월항쟁을 광주에서 경험했던 금속노조 법률원의 박훈은 ‘거대한 민중의 바다’라는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0일 동안 전개되는 것에 푹 빠져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껴요. 우리 해방구였어요. 가서 불 질러버리고, 포위해서 작살을 내버리고.. 어디가도 숨겨주고... 군복 입은 새끼들은 적이고, 군..

새로운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다

길 위에서 나눈 대화(1) 96년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울산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해 겨울 거대한 총파업투쟁을 경험했다. 태화강 고수부지를 가득 매운 거대한 노동자대오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다른 지역과 달리 울산은 노동자의 분신 속에서도 철저히 통제된 투쟁으로 일관했다. 거대한 총파업 대오와 노동관료들의 통제라는 현실을 보았다. 98년 현대자동차 현장조직운동 속에서 나의 본격적인 노동운동은 시작됐다. 정리해고에 맞선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완강한 투쟁, 현장과 지역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투쟁공동체, 현장조직의 정치적 분화 속에 이뤄지는 활발한 현장 활동 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은 커다란 감동을 주었지만, 이를 받아 안지 못한 지도부의 ..

문화활동가 유미희 이야기

2008년 10월 인터뷰 민주노조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도 대공장의 그늘 속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채 투쟁을 이어갔던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힘겨움과 고통이 많다. 울산 남구지역에서 활동을 이어왔던 유미희 동지를 만나 그 삶과 투쟁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67년 부산에서 태어난 유미희는 86년 부산대 사회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유미희가 맞이한 대학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다방에서 하는데, 가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대학생들은 거기 아무도 없는 거야. 흔히 생각하는 낭만적 분위기에 젖어 있는 사람도 없고, 잘생긴 선배도 없고... 남자 선배들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야상을 까만 물 들여서 입고, 수염들 기르고... 여자 선배들이라고 하..

공무원노조 울산본부 여승선 이야기

2008년 10월 인터뷰 어떤 노동조합이든 어용노조가 아닌 한 쉬운 활동은 없다. 그 힘겨운 노동조합을 공무원들이 만들었다. 가공할 만한 정권의 탄압, 차가운 여론, 거대 규모에 턱없이 모자란 간부역량이라는 조건을 감수하면서 10년의 세월을 버텨오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노조 울산본부 여승선 동지를 만나 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63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난 여승선은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아버지 장사가 망하면서 야반도주 같이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부산으로 옮겨온 가족은 불안정한 삶을 이어갔고,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1년 미룬 후 83년 취직한 형의 도움으로 부산 지산간호전문대학 방사선과에 입학하게 된다. “재수는 하기 싫고, 어쨌든 1차는 떨어졌고, 2차는 어디에 할까하고 찾아보다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이야기

2008년 7월 인터뷰 의사라는 신분을 갖고 노동자의 삶과 투쟁에 녹아드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호흡을 함께 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동지를 만나 그 힘겨우면서도 즐거운 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74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공유정옥은 6살 때 자식들의 교육을 배려한 부모의 결정으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년 재수 끝에 고려대 의대에 입학하게 된 것이 94년이다. 학생운동의 활력이 많이 줄어들었던 시절 공유정옥은 과 동아리인 ‘상계진료소’ 활동을 하면서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다. “도시빈민 진료소 같은 포맷인데, 토요일마다 상계동에 가서 오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