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나눈 대화 50

서울통신산업비정규직노조 윤순재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무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다양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서울통신산업비정규직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몇 년 동안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좀처럼 전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윤순재 동지를 만나서 쉽게 전망이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노조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72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순재는 공고 기계과를 다니면서 기능경진대회에 입상하는 등 나름대로의 능력을 쌓아갔다. 그런 영향이 있었던 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90년 삼성정보통신에 입사해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관악노동자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회사를 1년 다닐 때쯤에 전봇대에 ‘관악노동자학교’라는 걸 딱 봤죠. 그때는 어떤 건지도 몰랐고... ..

현대중공업 조돈희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격렬한 계급투쟁을 경험하면서 20년을 쉼 없이 달려온 노동자의 삶은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비합법 정치조직운동을 비롯한 정치조직운동과 현장조직운동에 몰입하는 등 노동자평의회운동을 실현하기 위해 실천해왔던 현대중공업 조돈희 동지를 만나 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5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조돈희는 불안정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중학교를 마치고 노동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무허가 치과 의료행위를 하던 아버지는 문제가 생기면 이곳 저곳 도망 다녔고, 보따리 행상을 하셨던 어머니 역시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형편이 아니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장사꾼으로 키우려던 어머니의 소개로 동네 그릇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 제과점, 가구공장 등에..

서울대병원 간병인분회 정금자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60년 가까운 생을 살아오며 늦은 나이에 노동조합을 알게 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있었다. 노동조합과 함께 시작된 힘겨운 투쟁의 기간은 신앙과 양심의 힘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굳건한 연대 속에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서울대병원 간병인분회 정금자 분회장을 만나 삶과 투쟁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51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정금자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도서관 사서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도서관 사서일이 워낙 박봉인데다가 꿈과 자존심이 있었던 정금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독일에 막 갈 때였어요. 광부 가고 간호사 가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간호보조학원 나와서 간호사가 아니라 간병인으로 보낸 것 같아..

대전의료생협 조병민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대전지역에서 건강과 생태와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화폐운동과 의료생활협동조합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자본주의적 이윤논리 속에 개별화되고 소외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운동을 실현시키기 위한 실험을 10년 가까이 벌이면서 비자본주의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의료생활협동조합 조병민 동지를 만나 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조병민은 충남대에 입학하면서 학생운동을 접하게 된다. 조병민이 입학했던 91년은 노태우 정권의 공단탄압에 맞서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으로 저항했던 격렬한 시대였다. “87년부터 사회분위기가 있었고, 우리가 다닌 고등학교가 천주교쪽 학교였고, 거기 계신 신부님이나 형들한테 그런 얘기를 들어와서 그런 분위기는 알..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금호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대구라는 보수적 지역 속에서 장애인으로서의 힘겨움을 안고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권리를 투쟁 속에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장애인운동을 벌이기 척박한 지형에서 벌여왔던 치열한 모색은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노금호 집행위원장을 만나 힘겨우면서도 활기 넘치는 얘기를 들었다.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난 노금호는 4살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병원 치료를 계속 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7살 때 루게릭(근육무력증, 근육이 점차적으로 퇴화되는 근육장애) 진단을 받게 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는 신앙의 힘으로 고쳐보겠다고 경기도 포천에 있는 기도원으로 노금호를 보내게 된다. “기도원에 있을..

전주 새날을 여는 정치연대 김종섭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신자유주의 광풍이 전국 곳곳을 휘젓고 있는 가운데 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한 연대활동과 저항투쟁을 벌이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전북지역이다. 미군기지투쟁, 핵폐기장투쟁, 새만금투쟁 등 지역의 주요 현안투쟁들이 매우 굵직하게 있었고, 그 외에 크고 작은 사회운동 영역이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철저히 지역을 기반으로 대안운동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새날을 여는 정치연대’의 김종섭 동지를 만나 숨가쁜 활동과 고민의 얘기를 들었다. 전북 군산 출신은 김종섭은 군산 미군기지 주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 미군기지와 미군에 대한 기억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 “저희들이 겪었던 그 당시 미군문화라는 것은 PX물품 많이 나오고... 아무래도 미군기지 주변의 주민들이 미군기지 안에서 일..

대구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좌파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사회권을 중심으로 한 인권운동 벌인다는 것은 소위 구좌파운동과 신좌파운동을 넘나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이 주체화되는 운동을 끝임 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가 있다. 대구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를 만나 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서창호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89년 전교조의 탄생이라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고등학생운동을 접하게 된다. “제가 고등학교 때 문학동아리에 있었어요. 거기에 지도교사가 전교조 선생님이었어요. 그 전교조 선생님이 가을 때쯤에 해직이 되셨어요. 협성고등학교인데... 거기는 고등학교 중학교 합치면 4개~5개가 모여 있는 곳이거든요. 전교조 문제 관련해서 학생회 차원에서 집회를 하..

부안 계화도 주민 고은식 이야기

2008년 3월 인터뷰 바다를 일터로 삼아서 살아오던 어부가 정부를 상대로 10년에 이르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쓰러지고 쓰러지면서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싸움이었다. 전북 부안 계화도에서 새만금 간척사업 저지를 위해 싸우고 있는 고은식 동지를 만나서 길고 힘겨운 싸움의 얘기를 들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고은식은 공사장 막일꾼이었던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부안군 계화도에 들어온 66년(당시 3살) 이후 계화도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다. 당시 부안에서 떨어져 있는 섬이었던 계화도는 63년부터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육지와 이어지게 된다. 고은식의 가족도 아버지가 계화도 간척장 일을 찾아오면서 계화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계화도는 그렇게 간척과 함께 육지와 연결되고 사람들이 늘어나서 현재..

호텔리베라 박홍규 이야기

2008년 2월 인터뷰 13년 연속으로 노조위원장을 장기집권 한 사람이 있다. 언뜻 부패한 노조관료의 이미지가 떠오를만한 그 13년의 역사는 법정관리 정리계획안 철회투쟁, 노조와해기업 인수저지투쟁,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127일 파업투쟁, 위장폐업에 맞선 619일 투쟁의 역사였다. 노조 내부의 철저한 민주성과 대전지역의 책임 있는 연대투쟁으로 만들어낸 투쟁들이었다. 호텔리베라 박홍규 동지를 만나 그 투쟁의 얘기를 들었다. 충남 논산에서 나고 자란 박홍규는 1년 재수 끝에 85년 한남대 화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학생운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채 봉사동아리인 RCY(청소년적십자) 활동을 하고 있던 1학년 말 우연치 않게 학생운동을 접하게 된다. “동아리생활하면서 우리 친구들이 ‘총학에 한번 도전해보자’..

민주노총 제주본부 고승남 이야기

2008년 2월 인터뷰 고립된 섬, 저항의 역사와 보수성이 공존하는 곳, 신자유주의 공세가 가장 선도적으로 이뤄지는 곳, 노동운동의 토대 자체가 극도로 빈약한 곳, 그곳이 제주이다. 그곳에서 민주노총 간부를 하면서 가랑이 찢어지는 10년의 세월을 보낸 민주노총 제주본부의 고승남 동지를 만났다. 타 지역에 비해 역동적이지 않고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동력도 부족한 제주에서의 민주노조활동은 묵묵히 몸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었다. 제주도 대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고승남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시인이자 전교조 활동가였던 김수열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김수열 선생님이었습니다. 89년에 전교조가 만들어졌으니까 잘리기 직전이었죠. 그때 당시에는 몰랐었는데..